[윤진영]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가운데의 삶
호머이야기의 율리시스(또는 오뒤세우스)를 보면,
외눈박이 괴불 사이클롭스에게 동료들을 처참하게 잡아먹힌 율리시스 일행이
이 외눈박이의 눈을 찌르고 탈출하고 난 뒤, 허겁지겁 허기를 채운 다음에
비로소 슬퍼서 통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각자가 제 살기에 바쁘면 주변의 슬픈 일이나 어려운 일들이 있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자기 배가 차고 마음이 놓여야 그런 슬픔이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생각했다.(또는 그런 설명이 들어 있는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46명의 삶이 사그러졌을 때도,
연평도 포격으로 무고한 인명과 재산이 피해를 받았을 때도,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그러한 상황이 이루어지는 현실에 안타까왔다.
그러나 그들을 가까이 알았던 이들의 가슴은 분명 분노에 가득차고 비통했으리라...
겨우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가끔 우리 외교부 내에서 부고장을 접하거나 그 유가족분들의 편지들을 접할 때면,
그분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남은 분들의 삶에 대해서 잠시나마
정말 잠시나마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에 남아 있는 나의 삶이 바빠서였는지도 모른다.
율리시스 일행처럼 사이클롭스로 부터 빠져나가려는 발버둥에 정신이 없던 나머지
주변 동료들의 고통과 희생이 다가오지 못했다고 한다면 정말 비겁한 변명일까...
지금 그분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남은 분들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왜냐면 내 주변 지인들 가족의 탄생과 죽음이 정말 최근에 연이어 닥쳤고
그 충격들이 요즘 나 자신의 일에 사로 잡혀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과로아닌 과로, 고민아닌 고민을 하던 나를 잠시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그저께 엘살바도르에서 내게 무예수련을 받던 친동생과 같은
수석제자의 첫 아들이 태어났고, 그로부터 몇 시간 뒤
한국에 있는 내 첫째 여동생에게서도 첫 아들이 태어났다.
정말 축하할 일이였고,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 기쁨을 같은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지만,
하늘에 감사드렸다.
그러나 어제 저녁, 내게는 장인과 다름 없던 아내의 대부(代父 Godfather)가
엘살바도르에서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었다.
집 밖에서 비질을 하다가 괴한에게 머리에 총을 맞아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가끔 삶은 영화보다도 더 비현실적이라더니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정하게 사시던 분이 병이나 교통사고도 아닌 총격으로 가시다니...
소식을 전하는 한국에 있는 아내는 분노와 슬픔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나 역시 그 슬픔을 같이 보듬어 줄 수 없음으로 비통함이 컸다.
전화너머로 울먹이는 아내를 달래고 나서
아내도 차마 연락하지 못했던 대모(代母 Godmother)와
통화를 하겠노라고 말을 전한 뒤, 숨을 고르고 연락을 했다.
남편을 잃은 상심 너머로 너무도 담담하게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는 대모의 목소리에
때 늦은 슬픔을 공감하려던 나의 교만함은
스르르 부스러져 없어지고 말았다.
혹... 대모도 삶의 수레바퀴와 함께 돌아가는 정신없음에
슬퍼할 겨를이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느 영화에서 본 것 처럼 전화를 끊고 나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 대한 묘사는 극히 짧게 마무리 하시고
오히려 그의 삶이 충실했고, 그로 인해 행복했음에 감사하는
대모의 독백과 같은 전화 목소리를 통해 대부의 영혼이 하늘에서
편히 쉴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나도 그와 같이 살 수 있을까?
나도 그 처럼 살고 있는 것일까?
내년 휴가 때 찾아뵙겠노라고 담담하게 통화를 마치고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대모는 침착한 상태이니
통화를 해 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1시간이 넘는 긴 통화 끝에
아내는 다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대모와 통화를 하며 울고 웃었다고 했다.
그동안 함께 찍어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들을 정리해서
그녀에게 보내주겠다며 이메일도 받았다고 했다.
우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웃기 까지야...
나와 내 아내가 태어나서 자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이럴 때 새삼 깨닫는다.
하긴, 나 역시 전역하고 나서 외국에 나와 오래 지난 터라
한국에서만 지내온 사람들과는 어른으로 성장해 온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요즘들어 새삼 깨닫고는 있지만...
이건 참 많이 다르구나...
다르지만,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논할 수 있는 성질의 다름이 아니어서
더욱 더 어색했다.
그리고 그런 여인들의 남편들인 죽은 대부와 살아있는 나
대부는 이미 죽었고, 나는 아직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기에...
우리 둘의 삶에 대해서만 곰곰히 생각해보려 한다.
아니, 살아남은 그의 아내와 내 아내의 삶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려 한다,
나도 그 처럼 살고 있는 것일까?
나도 그와 같이 살다가 갑자기 갈 수도 있을까?
내 아내도 대모처럼 남편의 죽음을 담담하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내는 엘살바도르 내전의 혼란 속에서 태어나 자랐다.
어릴적 집안으로 들이닥쳐 온 정규군과 게릴라군의 공포를 맛보았다.
거리의 주검들을 보고 이를 피해다니며 삶을 좇아 살아왔고,
삶의 소중함과 또한 그 덧없는 사그러짐을 너무 일찍 알아왔다.
그래서 군대와 폭력을 극도로 싫어하고
아직까지도 치안이 안정되지 않은 엘살바도르를 미더워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엘살바도르를 떠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엘살바도르에서 떨어진 이곳 코스타리카나
대한민국을 동경해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아내는 대한민국도 생존경쟁의 정글이라는 것을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며 배우고 있고,
나 역시 코스타리카가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 이곳 신문에서
한 무리의 범죄자들이 다이너마이트로 은행자동인출기를 폭파시킨 사건과
버스에도 소량의 다이너마이트를 던져서 승객들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사건의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어제 점심시간에 TV를 통해 이들 범죄자들이 비슷한 장소에서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려 하다가 일부가 이곳 경찰에게 체포되었다는
뉴스속보를 보게 되었다.
....
정말이지 나는 평화를 원한다.
평화로운 삶을 원한다.
그렇게 살고 싶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사는데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데로 살 것이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를 넘어서서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 윤진영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