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Life Vida2011. 11. 16. 19:33

[윤진영] 아마 이 사건들이 올해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세들어 사는 집 주인 Robert는 올해 74살 먹은 노인입니다.

얼마전 폐암에 걸렸다가 방사선 치료와 화학요법으로

고통스럽게 폐암을 치료하였으나,

최근에 왼쪽 목에서 또 다른 암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도 있고, 몸도 편치 않고,

요즘엔 물이나 음식을 삼키기도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가끔 제가 일찍 퇴근하면 말 벗이 되어 팔다리를 주물러주곤 했는데,

그 말 동무가 되는 것이 제게도 큰 도움이 되어

나중에는 제가 답답할 때 찾아가서 조언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의 부인이 맛난 스프가 있다며 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부인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저와 Robert는 잠시 차를 함께 마시며

우리가 왜 태어났을까? 왜 사는가? 라는 삶의 이유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일요일 오전에는 저에게 24반무예, 태권도, 합기도를 배우고

엘살바도르에서 제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수제자가 첫 아들을 보았고

일요일 저녁에는 한국에 있는 제 첫째 여동생이 득남을 하여

저도 한번에 첫 조카 둘을 보게 되었기에 무척 기쁘고 고무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월요일 밤 한국에 있는 아내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아내에게는 아버지와 같았고 내게는 장인과 다름없었던

아내의 대부가 지난주 목요일,

엘살바도르의 자기 집 앞 거리에서 빗자루질을 하다가

괴한들의 총을 머리에 맞고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은 일은 차마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제가 주제이고,

삶에 초탈한 사람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런 어려운 말도 스르륵 나오더군요.


요즘들어 직장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서로들 마음이 좋지 않아 개인적이고 답답한 일들을 

터놓고 나누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글 잘쓴다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계신 이곳에

이렇게 기막힌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말을 들은 Robert는 인생이란 기차와 같아서

계속 흘러가는 속에서도 오르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그에게 앞으로도 조언이 더 필요하니

아직 나와 함께 탄 기차에서 내리지 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스프를 함께 먹는데, Robert는 그렇게 잘게 갈아서 만든 스프에도

사레가 드는지 연신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아냅니다.

부인은 제가 신경쓰이는지 자꾸 남편을 바로 보려 하지 않고

저는 되려 신경을  안쓰는 척 무심하게 스프를 먹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Robert는 저에게

자기가 쓰고 제본한 30여 페이지 짜리 책을 보여주며

앞으로 300페이지 짜리 책을 쓰기 위해 90살까지는

살아야 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 때, 이곳 모팟스토리에서 스토리지기님이 쓴 

피그말리온 현상에 대한 글이 생각나더군요.

절실하게 바라고 원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통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그래서 뭔가 희망적인 것으로 말 벗의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으로 300페이지짜리 책 쓰는 것을 도와주겠다

인터넷에 다른 이들이 Robert의 책을 볼 수 있도록

블로그를 만들어 출판을 하겠다 말했습니다.

그는 반신반의로 그러라고 하며 제게 책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부터 밤을 세워 그의 책으로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가 제게 편지나 글을 주면 이 블로그를 채울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http://justathought.tistory.com/1


이제 몇 시간 후에 일어날 그에게 이 블로그를 보여주려는데...

맘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글을 많이 쎴으면 좋겠습니다.

......


아마 이런 여러가지 사건들이 뭉쳐진 지난달과 이번달이

올해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새벽 4시 27분(여기는 한국보다 15시간 느립니다)

- 코스타리카에서 윤진영 드림.

Posted by Master. Yun, Jin Yeong